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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일터에서의 소통 공간, 구내식당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연예인들이 회사의 구내식당을 찾아다니며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식당에서 밥만 먹는 게 아니다. 직원들과 함께 밥숟갈을 뜨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아무래도 밥 먹는 자리에서는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편한지 자연스레 그 회사의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직원들과 밥 먹는 것뿐만 아니라 일하는 모습도 나온다. 그 자체가 그 회사의 홍보용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나니 현재 한창 일하고 있는 현업의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최근에 또 한 번 사무소를 이사했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보니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둥지를 옮길 때가 생긴다. 매번 이사를 하면서 힘든 과정을 치루며 ‘다음번에는 모두가 일할 수 있는 사옥을 지어 더 이상 이사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꿈만 품고서 비슷한 공간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러나 한탄으로만 이사를 하지는 않는다. 나를 비롯한 회사 식구들이 머무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진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회사 사무실은 일하는 공간 말고도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공간’이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여 이사하며 공간을 꾸미는지도 모르겠다. ‘공간디자인회사’라는 사무소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우리 사무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은 독특하게도 ‘키친’이다.

     

     대부분의 사무실 분위기가 비슷하다. 사무실에서 온종일 일하는 사람들은 컴퓨터가 대부분을 차지한 책상을 두고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 회사라 할지라도 대부분 책상이나 도면을 그리기 위한 테이블 등으로 공간이 가득 차 있다. 직원들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제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간판만 뗀다면 그 어떤 업종의 회사 사무실과 일하는 모습이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밥 먹는 시간은 사실 직장에서 중요한 시간이다. 일터에서의 밥 한 끼 먹는 시간은 몸에 영양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화를 통해 많은 정보까지도 주고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끔 막힌 업무를 풀어가는 전환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식사를 하는 동안 생각을 다듬어 오후에 일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니 내가 일과 중에 밥 먹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이번에도 소박한 사무실 안에 예전 사무실처럼 오픈 키친을 만들었다. 키친은 사무소 식구들 말고도 외부 손님들까지 바에 앉아 미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가끔 업무와 상관없이 이곳에 앉아 와인 한 잔을 나눠 마시기도 한다.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더라도 정겨운 풍경이 그려지는 공간이다.

     

     정겨운 공간은 소소하지만 놀라운 발견과 막힌 업무를 뚫는 효율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 때 한 달에 한 번씩 날을 정해 순번을 정해 직원 한 명이 오늘의 점심 한 끼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다. 평상시 말 수 적던 한 남자 사원은 전혀 음식을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기막힌 스파게티를 만들어내는 반전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 친구가 이런 재주도 있었나? 내가 알지 못한 그 직원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후 곧잘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를 내며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사람을 볼 때는 다각도로 바라봐야 한다는 팁을 깨닫기도 했다.

     

     오픈 키친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공감의 소통을 나누게 해준다. 그 공간은 단순한 식사에서 그치지 않고 행복과 소통으로 가득 채워진다. 때로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간혹 상대하기가 힘든 고객이나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 의자에 걸터앉아 대화를 하다 보면, 막힌 일도 술술 풀릴 때가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화, 즉 돈을 언급해야 하는 견적 이야기는 사실 대화하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키친에서는 스스럼없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냐는 밥상머리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밥 한 끼 함께 먹으면서 사람에 대해 알고 진솔하게 서로를 대하는 공간. 일터에서 음식을 먹는 공간. 키친은 이런 공간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긴장을 풀고 서로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은 융화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 얼마나 멋진 공간인가.

     

     언젠가 건물의 가장 멋진 뷰포인트를 가진 장소에서 함께 먹으며 진하고 끈끈한 소통의 정을 나눌 수 있는 멋진 구내식당을 만들어 보고 싶다. 먹고 나누며 푸릇푸릇 희망의 싹이 움터 우리의 손길이 다른 공간에 펼쳐질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노태린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