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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염관리를 위한 시설투자 작은 데서부터 실천하자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 시곗바늘의 물리적인 시간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이 날은 원래 가장 바쁘기도 한 날이다. 연일 계속되는 미팅은 아직 해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 하지는 스산한 동토의 백야처럼 한산하다.

     

    병원을 주로 테마를 삼는 여러 컨퍼런스가 줄줄이 취소됐다. 강행군을 예상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던 지난 일주일의 스케줄이 곳곳에서 구멍이 났다. 덕분에 새로이 시작한 일에 신경을 더 쓸 수 있었고, 가족들과의 오붓한 시간도 보낼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러나 전혀 원하지 않았던 변수로 생긴 스케줄의 변화라서 달갑지가 않다. 아마 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도 메르스의 여파로 원치 않는 공백기를 보내는 중일 테다.

     

    메르스의 여파는 일뿐만 아니라 잔잔한 일상에도 돌을 던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파문은 물결이 얕은 출렁거림이 아니라 거센 파도와 소용돌이를 만들어버렸다.

     

    “다른 학부형이, 종합병원에 다니는 아빠를 둔 애들은 학교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학교 선생님께 말했대.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는 격앙과 억울함을 담고 있었다. 그 친구의 남편인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은 메르스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그런데 의사의 아이들은 격리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메르스는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이라는 불편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했다. 의사는 아픈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메르스의 공포로부터 멀어지겠다고 출근을 안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와중에 아픈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돌봐야겠는가?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공포는 현실이 되어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메르스의 공포가 주는 심각함은 사람 관계의 붕괴이다. 불신과 원망으로 서로를 바라보니 공동체의 운명도 폭풍우를 앞에 둔 배처럼 흔들거린다. 살얼음이 된 관계. 언제 깨지고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으로 이뤄진 관계망의 사회는 희망보다 절망을, 기대보다 좌절을 낳을 뿐이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동대구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답답한 열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불안감이 살짝 가신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 출장 갈 일이 있어 내려갔다. 이른 아침에 서울역에 도착해 내가 탈 열차를 찾아 좌석에 앉으려는데, 뭐라도 묻을까 봐 조심스럽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서 하얀 마스크가 긴장을 자아낸다. 좌석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소독제와 물티슈 등은 이제 생필품이 된 듯하다. 열차 안의 공간은 ‘편리하고 빠른’ 교통수단의 만족보다 밀폐되어 답답하고 불안한 공간이 돼 버렸다.

     

    열린 공간인 거리도 공포와 불안이 어슬렁댄다. 서로 접촉하지 않고 지나가려 애를 쓰고, 부쩍 자가용이 늘어났다. 사람들의 얼굴보다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적한 인도에 비해 차가 다니는 도로는 꽉꽉 막혔다. 꽉 막힌 도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느껴야 하는 초조함은 메르스 사태로부터 생겨난 불안과 초조와 오버랩이 되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병원 앞에 도착했다. 그냥 쓱 들어가면 되는 입구는 어느덧 오가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경계선이자 관문이 됐다.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그곳에 놓인 볼펜도 쥐기 싫다고 자신의 가방에서 펜을 꺼내드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 어쩌면 살벌하다고 할 수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병원에 들어갔다.

     

    이 병원은 오랫동안 우리 회사가 병원 곳곳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했다. 이번에도 또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려는 계획 때문에 나를 불렀다. 그런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예전처럼 눈에 보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를 고민해야만 했다. 이제 감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문제는 병원 내부만의 이슈가 아니다. 온 국민이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 감염관리에 대해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메르스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뭔가 인과관계가 분명한 단계에 들어선 게 아니다. 확실한 처방이나 대처 방안이 모호한 가운데, 공간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런저런 방안을 고민해보고 어떻게 디자인에서 적용할지 머리를 싸매지만 별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를 할까? 포기를 할 수 없으니 소극적이라도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을 끄집어낼 수밖에.

     

     

    <사진 2> 위의 사진은 손잡이를 누르면 밑에 소독제가 나오는 도어 손잡이다. 거추장스럽게 벽에 별도로 붙이지 않도록 새롭게 만들어질 도어에 적용해볼 수 있는 작은 노력이지만 큰 변화가 될 수 있는 시도이다.

     

    <사진3> 손소독제 벽 부착용이다.

     

     

    “이제라도 공조와 설비에 대한 내용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검토를 꼼꼼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미팅이 마무리될 즈음, 나는 눈에 보이는 시설의 변화 말고도 감염과 관련한 항목에 대해 다시 검토를 부탁드렸다. 화장실만 해도 독립적인 세면대의 설치, 세면대와 설비 배관을 벽 배관 형식으로 할 것, 센서 감응식의 수도 등 사소한 설비도 감염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안했다. 평소 손을 자주 씻는 소소한 예방 활동이 중요하듯, 시설에서도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설비의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자는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 병원 시설에 대한 규제는 더 많이 이루어질 듯하다. 그동안 병원 리모델링도 마감재 위로 환경을 변화시키고 당장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앞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협과 변수에도 대처할 수 있는 공간 시설을 만드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이런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초기 대응의 실패로 질타를 받았지만, 생명의 끈을 놓게 하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모습은 눈물겹다. 그들이 포기하는 순간은 이 사회가 붕괴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더워도 방호복을 벗지 못하고,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핏발 선 눈으로 격리된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뒷모습은 처량하면서도 결연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예민하고 복잡한 공간인 병원을 만들 때, 관행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자는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또 과시하기 위한 디자인보다 치유의 디자인을 되어야 한다는 성찰의 태도를 취한다. 그동안 방치됐던 의료나 공간 관련 데이터는 또 다른 위협과 공포를 예방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이미 의학계, 건축, 디자인, 의료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데이터를 가지고 불안에 대처하려 노력하고 있다. 메르스를 비롯한 감염의 공포에 대해 말 그대로 ‘총체적인’ 대책을 내놓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발걸음을 뗀 셈이지만,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단 한 걸음의 내딛음이 소중할 때다.

     

    글 : 노태린 /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 홍보이사/ 공간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저자

    출처 :

    www.green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