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비용 최대 만족스런 디자인은 무엇일까?
돈을 써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적게 쓰고 큰 만족감을 가지려 한다. 나도 물건 하나를 살 때마다 알뜰주부의 근성을 발휘하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물며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하는 리모델링이니 오죽할까.
인사치레로 흘려 넘기려니 뭔가 따끔거린다. 돈 이야기는 서둘러 마무리되고 켜켜이 쌓이는 요구사항 때문에 멀쩡하던 소화기능이 마비된 듯하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기어이 몸은 탈이 나고 만다. 오죽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턱이 어긋나 교정을 받은 적도 있다.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업을 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몫이다. 결국 비용을 아끼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는 숙제를 풀어야만 한다. 비용이 적다고 투덜댈 만큼 시장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또 한 번 내 안의 미네르바 그분을 호출한다. 전쟁의 신 미네르바가 아니라 지혜의 신 미네르바를.
작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요구하는 프로젝트 중에 병원 외관의 한 벽을 바꾸는 게 있었다. 그 벽은 창문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벽이었다.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도로변에 노출된 그 벽을 병원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상징으로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때 문득 캐나다 퀘벡의 한 벽화마을이 떠올랐다.
이 마을을 갔을 때, 나는 마치 동화 속을 노니는 기분이었다. 곳곳에 환상적인 그림으로 가득했다. 마을 벽화로 유명한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는 달리 아주 큰 건물의 벽에도 근사한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런 벽화를 꾸미려면 상당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느낌처럼 세세한 손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간단하고 확실한 탈바꿈이 될 수 있는 슈퍼그래픽 페인팅 도안은 잘 연출된다면 확실하게 비용대비 만족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클라이언트와의 밀당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일을 할 때마다 겪는 밀당 때문에 속이 불타 오르다가 다시 마음을 비우기를 여러 번 하기 일쑤다. 그런데 늘 일을 끝내고 나면 뭔가 아쉽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가끔 비용절약으로 남지 않길 바랬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말이다. 행여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의 책임은 밀당의 조율 과정보단 디자인의 책임이 되고 만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마법같은 영감이 술술 나오길 바라는 내 어깨는 등짐 한보따리를 지고 있는 느낌이다.
비싼 고급 마감재를 골라 한껏 뽐도 내고 싶고 이번엔 뭔가 달라보여야 하는 마음 늘 굴뚝같다. . 도대체 미네르바 여신은 어디 있는 걸까? 오늘도 한 껏 고객과 밀당을 마친 후 지쳐 앉아 기다린다. 그녀가 내게 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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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태린 /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 홍보이사/ 공간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저자
출처
소화아동병원사진 :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