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중앙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5.06.16 17:42)
병원공간, 다시 한번 생각해볼때
“마스크는? 세정제도 챙겼지?”
요즘 일로 병원에 갈 때마다 확인하는 게 있다. 마스크와 세정제를 챙겼는지 또 한 번 확인을 하고 차를 탄다. 어쩌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하니 호들갑이라도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것저것 챙겨 차를 운전해 병원에 도착했는데, 한산할 줄 알았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알고 보니 입구에서부터 통제를 하는 바람에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꼬리 마디가 하나씩 줄어들더니 내 차례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차를 대신 해줄 테니 내려서 병원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아니요. 제가 지하에 주차하고 올라갈게요.”
가뜩이나 메르스 감염의 공포로 병원 들어오는 것이 예민한데 누군가에게 운전대를 맡기기가 싫었다. 심신이 고단해도 굳이 지하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에 비즈니스로 다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안부로 건강을 걱정하는 문자가 쇄도하는 가운데 감염의 공포로 마스크로 무장하고 물건이나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다니는 내 모습 또한 가관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병원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출입구를 쳐다보니 메르스가 일상을 확 바꿔 놓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치 우주비행사를 연상시키는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들, 출입구는 한군데만 열어놓고 공항의 까다로운 입국심사처럼 사람들을 통과시켰다.
병원 안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은 없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북적대던 대기실엔 앉아 있는 사람이 한 명 없이 조용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더 이상 치유의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포의 공간으로 여기는 것일까? 메르스의 공포는 최첨단 의료장비와 뛰어난 의료진, 그리고 편안하고 세련된 공간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병원 공간을 수년간 만들면서 요즘처럼 많은 생각들로 엉킨 적이 있었나 싶다. 그동안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노력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질병을 대하는 공간을 만들면서 무엇을 간과했는지, 또 작금의 현실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먹먹했다.
몇 해 전, 나는 지은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유럽의 한 건물을 본 적이 있다. 겉보기에 아주 튼튼하게 잘 지은 건물이었다. 튼튼하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만 보고 있으면, 건축의 ABC를 잘 지킨 것이라고 박수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박수를 치지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박수를 친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 건물은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삶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 공간은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공간은 이처럼 애초부터 아늑함보다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질 수 있다.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린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의 이중성보다 더 큰 충격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죽음과 절망이 아니라 치유와 희망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병원은 이제 두려움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병원은 분명 아우슈비츠와는 정반대의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출신을 따지지도 않고, 재산이나 인종도 따지지 않고 아픈 것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주려고 만든 곳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병원은 어떤가? 한순간에 병원이 메르스의 온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치유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듯하다. 이젠 불안과 공포의 공간으로 전락해버린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지금껏 이렇게 전염이 되는 병에 대한 감염관리에 대해 취약한 적이 있었을까? 단지 보이는 것 위주의 쾌적함으로 치유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동안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된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급변해온 한국의 고도성장과 맞물려 의료시설도 지금까지 계속 진화해온 것은 사실이다. 공간의 규모도 커지고, 각종 최첨단 설비와 쾌적한 시설의 면모를 갖춰 왔다. 그러나 또 한 번 병원 공간의 질적 변화를 꾀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놓고 볼 때, 앞으로 메르스만큼이나 심각한 감염 사태가 몰고 올 수 있는 치명적인 상황을 미리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메르스 이전에도 사스, 신종플루 등 거의 매년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는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메르스를 가까스로 수습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에볼라를 비롯한 각종 감염 질병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놓고 대응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미국의 ‘네브라스카 Biocontainment’ 프로젝트는 이미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Biocontainment는 생물학적 봉쇄라는 의미인데, 에볼라처럼 강력한 전염성 질환을 앓는 환자가 장기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생물학적 봉쇄 시설을 갖춘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만들어진 병원은 바이오 테러나 강력한 전염성의 질병에 감염된 환자들을 가장 먼저 수용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감염 확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기처리와 세균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실태와 견주어 볼 때, 헤파필터 장치가 되어 있는 격리공간은 거의 음압 양압이 분리된 두 칸 정도의 최소 공간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공간 기준에만 부합할 정도일 뿐, 지금처럼 대규모 감염 확산이 발생할 때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감염 환자를 태우고 다니는 이동 차량의 공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사용 중인 구급차나 전용 차량 등은 감염에 너무나 취약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돼 버린 대규모 감염 확산 문제를 염두에 둔 시설 확산과 공간의 구성을 빠른 시일 안에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감염에 대한 대응책이 없지는 않았을 테다. 의료평가기준에 따른 규정과 대응방안이 있었을 테지만, 알다시피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속수무책으로 감염에 뚫리고 있다. 그래서 또 다시 변화를 단호하게 추구해야 한다.
병원 공간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매일 맞닥뜨리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소홀히 하고, 미흡하게 처리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공간을 디자인하고 작업했던 사람들 대부분 병원 내 감염의 확산이라는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테다. 지금부터라도 과감히 투자를 하여 출구부터 감염과 비감염을 판별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보자는 등 감염의 공포를 차단할 수 있는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모두가 이런 병원을 왜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격리공간을 하나 만들려고 해도 막대한 시설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개별 병원의 힘으로는 쉽게 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또 병원 공간을 온통 공사장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병원 공간은 의료당국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개인의 위생과 청결, 공간의 위생 등 현재 할 수 있는 감염 예방의 기초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국가는 정책적으로 감염 예방과 차단, 치료 등의 시설 확충에 대한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함께 이뤄져야 두 번 다시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지 않을 것이다.
거리와 공간 곳곳에 마스크 차림이다. 사람들의 눈빛은 근심을 가득 차 있다. 모두 뉴스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마스크로 기초적인 감염 예방으로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으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메르스 때문에 고통 받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애처롭기만 하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서면 어떻게든 확산을 막고 환자들을 가까이 접촉하면서 치료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고군분투를 가까이서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안타깝고 속이 타들어 간다. 사람들이 여름의 무더위에 시달리기 직전 요즘처럼 시원한 산들바람의 좋은 날씨를 하루속히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염원한다.
출처 :
- http://nxthealth.org/patient-room-2020/
- https://youtu.be/1pYsoo4WpZU
- http://www.nebraskamed.com/biocontainment-unit
기사 원문: https://jhealthmedia.joins.com/article/article_view.asp?pno=15120
글 노태린 공간디자이너( 공간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저자 /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