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중앙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5.09.02 10:28)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병원의 웨이파인딩 사인 디자인

 

빨간색이 강렬하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는 어떤 건축학과 교수님이 병원에 환자의 보호자로 하루 종일 지내면서 느낀 단상을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응급의료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색이 식별력은 있을지라도 환자들에게 무서움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병원 디자인을 하면서 빨간색으로 응급의료센터를 가리키는 디자인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나도 대부분의 응급의료센터 사인에 빨간색을 활용했다. 빨간색은 사람의 감정을 순식간에 반응토록 해서 빠르고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한다. ‘웨이파인딩(Way finding)’, 즉 방향을 가리키는 작업을 할 때 상당히 효과가 있는 색깔이다. 그런데 아무리 빨강으로 커다랗게 써놓더라도 접근성이 곤란한 위치에 응급의료센터를 배치하면 그 효과는 반감된다. 찾기도 어려운 구석에다가 만들어놓은 응급센터에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찾아가기 어렵다면 응급의료센터라 부르기도 민망해진다.

 

색깔과 공간은 이른바 궁합이 맞아야 한다. 빨간색이 위급한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위급한 상황을 빨리 해소할 수 있는 공간 설계와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간에 녹아드는 색깔의 활용은 똑같은 면적과 기능의 공간도 사뭇 다른 사용자의 만족도를 보여줄 수 있다. 예컨대, 빨강도 위급한 것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세련된 공간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색상의 일반적인 감정 코드로 인해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는 붉은색을 병원 대기실이나 접수 공간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도 기능적 디자인에서 미적 디자인을 많이 고려하는 요즘에는 이러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흰색과 빨간색만 연상되던 병원에 노랑, 주황, 보라 등 다양한 색깔이 도입되어 공간의 이미지를 바꿔놓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능으로서의 색깔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다만, 기능적 표시만을 위해 위압감이나 불편함을 초래하는 디자인에서 벗어나 산뜻하고 간결하게 편의적인 색깔 디자인으로 바뀌는 추세다.

 

 

밝고 경쾌한 사인디자인만으로도 아픈 환자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 ( 연세대학교 암병원 어린이 입원 병동 )

 

 

1. 색다른 사인디자인의 발상으로 병원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일본의 우메다 병원에서는 빨강 하나로 모든 사인을 통일시켰다.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여 바닥에 사인을 넣은 게 특징인데, 환자에게 빨강의 감정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단순화된 기로의 디자인으로 처리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병원의 전체적인 디자인 콘셉트와 매치되고, 웨이파인딩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멋진 발상이다.

 

색깔을 비롯한 시각적 이미지는 병원 공간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간을 다투는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각각의 공간, 즉 진료실과 수술실 등으로 쉽고 빠르게 찾아가도록 도움을 준다. 그런데 직관적인 공간 표시뿐만 아니라 병원 공간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까지 배려한 디자인도 있다.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인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어린이 병원의 사인을 동화책처럼 구현했다. 응급실을 나타내는 디자인은 빨강을 사용하더라도 그냥 색깔과 텍스트, 혹은 기호만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피범벅인 아기 새를 구하려고 힘껏 달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응급실을 표현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나의 블로그 무서운 병원은 없다. 1(웨이파인딩) 에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2. 밝은 이미지의 장례식장의 모습으로 새로운 장례문화를 선도한다.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

 

 

최근 문을 연 어느 병원의 장례식장 입구 전경이다. 흔히들 장례식장이라 하면 짙은 어두운 색감으로 일색 된 공간을 상상할 것이다. 이곳은 그런 관념을 넘어서서 밝고 희망적인 색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장례’ ‘장례’의 분위기를 새롭게 심어주고 있다. 단지 색상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뿐 아니라 해, , 별 등의 우주의 상징들을 자연스럽게 사인 이미지에 넣어서 형상화한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흔히 병원안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된 로고나 병원 이름으로 일색 된 사인 디자인을 과감히 탈피하여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볼 수 있는 웨이파인딩의 다양한 디자인들을 볼 때 환자의 입장으로써 과연 어떤 것들이 마음에 와닿을까? 이때 마음에 든다는 것은 단지 미적 만족감을 넘어 위급함을 가리키는 기능적 역할과 불안감을 완화할 수 있는 심리적 배려까지 충족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언급한 스페인의 어린이 병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연출한 고양이의 등 위에 피 흘리는 아기 새의 형상을 보고 응급실로 식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환자들의 눈높이에서 공간을 바라보면서 세심함을 배려한 마음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다시 한번 그 병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결국 디자인에 마음이 깃든다는 것은 고급스러운 자재의 효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마음에 파고들어 그들에게 병원 공간 안에서 아픔을 잠시라도 잊고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것이리라.

 

글 : 노태린 (공간디자이너/ 작가)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 /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 홍보이사 / 공간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저자

출처 :

- http://blog.daum.net/shalrud2/7440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