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디지틀조선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4.07)

 

병원은 왜 아름다워야 하는가?

 

공간디자이너,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을 좀 더 편안하게, 깨끗하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동안 많은 집과 사무실, 상점, 학교, 유치원 등을 고쳐왔는데 그 중에서 사람들이 조금 낯설어 하는, 나의 특이한 이력은 바로 병원이다. 병원을 아름답게 고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병원을 아름답게 꾸민다고? 아름다운 병원? 그런 병원이 있어?”

 

이런 반응이 이상한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 ‘병원’이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것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아름다움’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병원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보니, 어릴 때 일이 생각난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집 가운데 겉모습이 다른 집보다 하얬다. 물론 내부는 전혀 하얗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이미지를 풍기는 우리 집은 유독 동네에서 하얗게 두드러졌던 모습 때문에 동네 랜드마크가 되곤 했었다. “하얀 집 건너 몇 번째 집……” 이런 식으로 다른 집들을 알려주곤 했으니까. “병원 같은 흰 집 있지? 그 집 뒷집인데……”라는 말을 들어 봤던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 병원의 색깔을 말하라면 대답은 흰색이다.

 

커서 알게 되었지만 은어로 정신병원을 가리켜 ‘하얀 집’이라고도 한다는데 정신병원이 하얀 집이라면 다른 과들의 병원은 어떨까? 또 다른 병원의 색은 무슨 색이면 좋을까? 연상해 본다면 이런 색깔들을 떠올리실 것이다. 회색 콘크리트 벽, 빨간색 피, 초록색 수술가운, 메탈색 수술도구. 이 정도?

 

한때 어느 휴대폰 CF를 통해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는 카피가 유행어처럼 번졌는데, 메탈이 가장 완벽한 물질일지는 몰라도 따뜻한 이미지의 물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콘크리트 벽, 피, 수술가운이 주는 회색, 빨간색, 초록색의 이미지도 마찬가지. 병원을 생각하며 빨간색의 열정, 초록색의 싱그러움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겠지. 차갑고 삭막한 곳.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무섭고 쾌적하지 않고 결코 편하지 않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병원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고 가기 싫은 곳으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 병원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병원은 가기 싫다고 해서 가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순서를 기다리고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기다리고 진료비를 수납하는 동안, 혹은 입원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계속 차가운 이미지에 둘러싸여 벌벌 떠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병의 치료에도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환자의 마음을 배려하는 병원의 인간중심적 디자인 접근의 가장 큰 사례가 된 것은 다름아닌 MRI기계와 같은 첨단 영상의료 시스템 설계와 개발자부터였다. 디자인 기업 IDEO회사 창업자인 데이비드켈리가 저술한 [유쾌한 크리에이티브]에 그의 에피소드가 자세히 나와 있기에 소개보면 대락 이렇다.

 

GE에서 24년을 근무한 고참인 더그 디츠(Doug Dietz)는 180억 달러의 자산 가치를 지닌 GE 헬스케어(GE Healthcare)에서 개발한 수백만 달러짜리 MRI(자기공명영상) 시스템은 고통 없이 인간의 몸을 꿰뚫어보는 장치를 개발하고 처음 자신 만만해 했다고 한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마술이라고 생각됐던 것이다.

 

그러나 더그는 허약해 보이는 소녀 한 명이 자신이 개발한 MRI 기계로 촬영하러 온 아이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부모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부모는 근심에 찬 표정이었고 소녀는 겁에 질려 있었고 더그가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동안 소녀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약한 환자들이 자신의 기계 앞에서 보여준 불안과 공포를 목격하게된 것이다. 이 일은 그의 관점을 영원히 바꿔놓을 어떤 개인적 위기감을 촉발시켰다.

 

그에게 그 기계는 칭찬과 경탄의 대상이 되는 우아하고 매끈한 첨단 기술 작품이었지만, 울고 있던 아이에겐 자신을 배속으로 집어삼킬 크고 무서운 괴물일 뿐인 기계에 대해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전일무이한 해적선 우주선 등의 모험심 가득차고 동화속에서 나올 법한 MRI기계를 디자인하여 병원에 아이들이 검사받으러 가더라도 무섭지 않고 꿈과 희망을 실어줄 것 같은 모험속 공간을 만들어 그동안 천편일률적인 하얗고 무서웠던 병원의 공간을 재조명하게 하는 큰 획을 긋게 된 것이다.

 

요즘 일을 의뢰받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요청은 ‘○○답지 않게’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무실은 사무실다워야 하고 병원은 병원다워야 했다. 그게 당연했다. 기능적인 곳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워야 함을 넘어 ‘○○답지 않게’ 만들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보편을 넘어 당연해지고 있다. 사무실은 사무실답지 않고 병원은 병원답지 않게. 각각의 기본 요소만 필요할 뿐 이제 공간은 ○○스럽지 않도록 하는 게 콘셉트인 듯하다.

 

하지만 그 말은 그 ○○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본적인 기능은 당연히 잘 하면서, 또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여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공간 역시 유동적이고 가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형태의 스킬이나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반영해야 한다. 누구나 말하는 인간중심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행하기 편하게 살아가기 좋도록 하는 디자인이다.

 

이제 병원의 기능은 그 공간 안의 모든 사람에게 작용한다. 병을 고쳐야 하는 환자나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사와 간호사, 환자의 보호자 또는 가족들, 사무적인 업무를 보는 직원들까지.

편안한 분위기는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마음의 안정은 병원의 기본 기능인 ‘질병의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또한 편안한 분위기는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와 간호사, 직원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는 근무 능률을 향상시킨다. 근무 능률의 향상은 더 나은 고객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병원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 환자뿐 아니라 아픈 환자를 대하며 함께 하는 그 모든 사람을 위해 병원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 어느 곳보다도 기능도 보이지 않는 마음씀씀이의 배려도 디자인해야하니 더 아름다워야 하고, 그래서 병원 공간 디자인은 보람되다.

 

연세의료원 암병원 소아암센터 외래

 

최근 디자인한 연세의료원 암병원 소아암센터 외래이다. 아픈 암환자 아이들의 마음에 희망과 꿈을 피어줄 수 있도록 따스한 색감과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잠시나마 재미난 상상과 체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디자인 요소를 심어 놓았다. 거대한 기둥은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인터렉티브한 나무로 변신하였고 곳곳에 변화있는 쉴 곳을 만들어서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 곳을 다녀간 아이들은 “ 엄마 병원에 또 가고 싶어요.” 한다면서 함께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고락을 하던 담당 간호사선생님이 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