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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글은 디지틀조선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4.07)

     

    환자가 되어 경험을 디자인해야 그 맘이 전해진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공중화장실을 ‘내 집 화장실처럼’ 사용해달라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너무 흔히 보는 글이라 무심코 넘길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만한 지침이 또 없다. 누구를 대하든 내 가족처럼, 무슨 일을 하든 내 일처럼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공간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이 공간을 사용할 사람의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게 일의 시작이다. 가정집의 인테리어 수주를 받았을 땐 가정주부로서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학교나 유치원 공사 의뢰를 받았을 땐 학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아이의 학교를 고치면서 우연히 학교 옆 병원을 고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병원 공간을 바꾸는 데에만 힘을 쏟은 지도 어언 10년이 훌쩍 지났다. 병원을 고치는 일 역시도 병원 이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몇 년 전이었다. 일 때문에 전국을 쏘다니니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병원을 뜯어고치는 일이 주 업무이기에 거의 매일 병원에 출퇴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면서도 정작 내 몸 하나 돌보는 데는 소홀했으니 이것도 일종의 업무 태만 아닌가. 간신히 짬을 내어 이런저런 검사 일정을 잡아놓고 검진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몸에 큰 병은 없었지만 그 일로 많은 것을 느꼈다.

     

    병원을 뜯어고치러 다니는 여자로 병원 문을 들어설 때의 느낌과 진료를 받으러 들어갈 때 느낌은 완전 다르다. 그러면서 공사할 때 느끼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분위기가 예쁘고 환하다고 느끼는 건 병원에 앉았을 때 잠시뿐이고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살펴주는 작은 문구들과 간호사가 환자를 대하는 정성스러운 태도들이 더 끌린다. 환자의 마음을 살펴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직접 느낄 수는 없었는데 건강검진 덕분에 이렇게 하루 종일 환자로서 병원이라는 공간을 살펴볼 수 있게 되니, 건강검진 날은 더없이 큰 재충전의 날이자 배움의 날이 됐다.

     

    공사자와 설계자의 입장에서 병원을 바라볼 때와 환자가 되었을 때 혹은 그 곳에서 업무로 종일 일하는 사람이었을 때의 공간의 경험은 다르다. 큰 병원 몇 백 평을 설계하기 위해 도면을 펼쳐 놓고 보면 각각의 분위기와 실별 공간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건축적인 설비와 전기 같은 부분들과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도면을 작성한다. 때론 기둥과의 간격을 고려해야 하고 공간에 놓이는 기계 장비들과의 면밀한 사이즈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에 마치 수학을 하듯 도면들의 씨줄 날줄 같은 선들 속에 밤을 새워 싸운다. 그렇게 작성된 도면들은 죽을힘을 다해 수행한 설계자들의 마음이 모아진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눈매로 또 다시 수차례 걸러진다.

     

    실제 이용자들이 다니는 동선의 편리성과 공간의 쓰임에 맞춰 커지고 작아지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된 도면엔 실제 공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에 대한 배려가 들어가게 된다. 새로 짓는 병원인 경우에는 조금 유연하지만 오래된 병원 혹은 환자들이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곳의 리모델링은 단기간 최대한 소음이 나지 않도록 공사할 수 있는 디자인 안을 내야 하니 이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여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공간디자이너의 능력이며 그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다.

     

    늦은 밤 야간작업이 또 시작되었다. 환자들이 최대한 머무르지 않는 틈을 타서 내일 오픈을 맞이할 자투리 공간의 쉼터를 단장하기 위해 목공 팀과 페인트 팀이 함께 작업을 하기로 하고 진료 이후 불을 밝혔다. 장마라 후덥지근한 여름날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지신 걸까. 병원 식당아주머니께서 냉장된 시원한 수박을 한 통 잘라 가져다주신다. 수박을 나눠 먹는 정겨움 속에 밤일의 피곤을 삭히며 내일 오픈할 새로운 공간에 기계음을 더한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이곳을 보고 환자들은 ‘도깨비가 집을 짓고 갔나?’하면서 깜짝 놀랄 것이다. 쉼터에 앉아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며 기뻐할 환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나 역시 기쁨의 미소가 번진다. 병원을 고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내 마음을 환자들에게 이곳을 쓰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디자인할 때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경험해야 시행착오 없는 디자인으로 완성된다. 과거의 책상머리에서 스타일을 논하면서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직관보다는 실제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충분한 의견을 도출하는 사전 리서치및 수행과정의 중요성을 파악하여 디자인하는 것이 의료공간디자인의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