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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글은 디지틀조선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2014.07)

     

    병원의 두 평 희망방 - 간절함이 희망으로 꽃피는 힐링 공간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정신없이 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데이터를 만들기에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헉헉대며 병원 여기저기 돌며 바뀐 공간들을 찍었다. 다 되었다 싶어 로비에 앉아 한시름 놓고 있는데, 아뿔사! 한 군데 찍지 않은 곳이 생각났다.

     

    작은 기도실이었다. 두 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곳이어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다시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살피며 땀을 식히고 잠시 여유를 찾은 뒤, 그 한 컷을 담기 위해 기도실로 향했다. 내가 만든 묵직한 원목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엔 두 사람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난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뒤편에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은 앙상하게 마른 환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카락 없는 빈 머리에 옷을 입었다기보다 그저 뼈를 가린 것 같은 그런 모습. 손을 모을 수도 없이 여러 개의 링거에 매달려 있는 주사바늘에 의존하고 있는 그 환자는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분. 중년이 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주문을 외듯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작업한 공간의 완성사진을 찍으러 갔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의 모습을 담게 되었다.

     

    그들의 애타는 마음과 그들이 응시하는 무엇까지 공감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공간의 완성이란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분들의 간절함을 함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원공간을 바꾸는 디자이너로 일하던 나에게 이 광경은 깊게 각인되었다. 아픈 환자의 마음과 환자를 위해 절실하게 기원하는 보호자의 마음은 내 마음 속에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 자리잡았다. 거대한 병원은 각종 편의 시설로 넘쳐나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변화해 가지만 절박하고 절실한 애원을 하고 싶은 사람이 호소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놓은 곳은 극히 드물었다. 병원에 머무는 사람들 중 단 몇 명이라도 이런 곳에서 위로가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일생 기억남을 장소이자 잊지못할 곳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었다.

     

    나 역시 생업에 시달리며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조금이나마 짬을 내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뜻을 모아 작은 공간을 바꿔 나가고 싶었다.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큰 회사에서 기획을 맞고 있는 후배 유효인에게 나의 이런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녀는 실천가능한 의미있는 일이 될 거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월의 중순. 뜨거움이 시작되는 여름 , 학교 후배 경영학부 박수민을 만났다. 수민이는 한창 직장을 구할 시기인 4학년임에도 금쪽같은 시간을 내주었다. 효인의 회사에서도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이런 의미있는 캠페인을 할 때 아르바이트로 일해 본 경험이 있다는 수민이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더 많은 기획의 경험을 쌓아가고 싶어했고 특히나 공간으로 구현되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에 대한 많은 기대를 품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녀는 이런 뜻에 동조하는 친구들을 몇 명 더 이끌고 왔다. 디자이너의 길을 가고 있는 강단있는 예솔, 공감대가 맞는다며 이번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연심과 정은, 창업을 꿈꾸는 후배 수빈이까지. 그리고 내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 조병천 코치를 더하면 모두 6. 우리는 매주 토요일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아직 어디에 공간을 꾸밀 것인지조차 결정된 게 없지만 누군가에 의미있고 간절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즐겁기만 했다.

     

    이제 계획을 실행해야할 공간이 필요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지난해 소화기 암센터를 만들면서 인연이 닿은 강북삼성병원측에나의 뜻을 전달했다. 다행히 강북삼성병원에서도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평의 작은 공간을 내주었다. 막연했던 생각이 점점 현실로 이끌어져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니 일은 급속도로 진전이 되었다.

     

    어떤 방향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까 고민하다 병원에 기도실이 있다면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심상 이미지를 만들어 떠올리도록 하고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시작하고 실제 인터뷰와 현장에서의 워크샵을 실시했다.

     

    그렇게 해서 기도실의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촉각적 이미지가 구체화되었다. 설계에 앞서 우리는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작은 기도실들에 다시 한 번 가 보았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어떤 느낌으로 기도실을 방문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그들 속에 앉아서 기도도 드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며 기도실을 그리는 동안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병원에 기도실을 만든다고 하니 혹시 무슨 이단 종교 단체 사람들이 와서 기도실을 꾸미려는게 아닌가 하는 문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단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오인받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인터뷰 조사와 워크숍의 결과를 통한 리서치의 산출물로 기도실 설계 방향을 잡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지만, 공통적인 생각은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본인 혹은 가족의 쾌유를 비는 간절한 마음을 특정 종교로 제한할 수는 없으므로. ‘기도실이라는 단어 역시도 종교색을 짙게 띄고 있는 것 같아서 기도실이라는 이름을 대체할 수 있는 이름 공모도 했다.

    그렇게 해서 희망방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간곡하게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애원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쓰였으면 하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했된 것이었는데 단순히 나의 마음뿐 아니라 같은 것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이 공간이 탄생했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디자이너 개인의 취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채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의견이 수렴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희망방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모여 만들어낸 결실이다.

     

    희망방이 만들어지는 여정을 통해 공간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간절한 바람이 있는 사람들이 희망을 기다리는 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고 했던가.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 이 희망방에서 꽃 피기를 기원한다.

     

     

    공간에 공감하다 프로젝트는 두 평의 짜투리 공간에 사람들이 이 곳에 머물면서 힐링이 되고 병원안에서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까지 의 과정이다. 그 과정으로 탄생된 희망방은 큰 병원이라는 형태 안에 나만의 기억되는 장소 점과 같은 작은 장소를 통해 병원에서 개인의 마음까지 치유될 수 있는 속 깊은 배려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