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성의 흐름을 온화하게 덧입힌 공간적 사유
아이소망 산부인과 의원
디자이너는 아이소망 산부인과 의원을 보는 순간, 마치 오래전에 문을 닫은 아날로그 영화관을 보는 듯 하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에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함을 경험했다. 특히 클라이언트가 병원 곳곳을 보여주면서 공간의 역사를 말해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먼지 묻은 과거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에게 새로운 추억을 경험하게 하는 뜻깊은 공간이었다. 디자이너는 병원 뒤뜰 정원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과 싱그러운 꽃들을 보게 되면서 평온한 정원으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산모와 아이들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정원과 같은 공간을 떠올린 것이다.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에서 촉망받는 부인과 교수였던 아들은 대를 이어 아버지의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이들 부자는 추억의 흔적을 보존하면서도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공간의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이에 디자이너는 의료 환경의 변화를 요구하는 아들의 뜻과 추억, 평온함, 새로움, 현대적 환경 등 다양한 공간의 역할이 담겨 있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접수공간은 오랜 추억이 담긴 아이템과 현대적인 아이템의 자연스러운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디자이너는 부자가 대물림하며 책상으로 사용했다는 필경가구를 진열장처럼 연출하여 스테이션을 만들었다. 특히 병원이란 특수 공간 리모델링은 미적 감각보다 기능의 효율성이 중요하고, 쾌적함과 안전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낡고 오래된 예전의 마감재는 다 바꾸고, 소품의 활용과 장식을 통해 지난 시간의 흔적을 되살려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관 1층과 연결된 옆 건물의 불임 치료연구소는 그나마 가장 최근에 공사가 이뤄진 곳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던 마지막 시기에 시설 공사를 한 덕분에 기본 마감재가 탄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디자이너는 대기실 쪽의 대리석 벽과 바닥재는 그대로 두기로 하고 광택을 내어 연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지하부터 연결된 각 층의 계단은 각기 다른 조명들과 소품, 그리고 컬러별로 식별하기 쉬운 사인디자인 작업을 진행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김정순 한지 조명작가는 각각의 공간마다 그곳에 어울릴 수 있는 조명으로 고객들에게 편암함을 유도해냈다. 한지 소재가 주는 따스함이 병원 전체를 감싸 안아 공간을 더욱 안정되고 차분하게 이끈 것이다. 이러한 연출력은 기존 병원이 갖는 딱딱함에서 벗어나 훨씬 부드럽고 온화한 미적 가치를 구현해낼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디자이너는 제한된 좁은 공간 안에서 기존 건물의 한계를 넘어선 평면 배치를 동선의 세밀한 배치로 해결하였다. 작은 전실 공간까지 일일이 사이즈를 실측하여 동선을 만들어 공간을 재조정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수술실과 케어센터의 공간들은 시스템과 장비 배치까지 중대형 종합병원보다 더 나은 위생과 안전을 적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특히 아이소망 산부인과에는 방마다 숫자가 붙어 있지 않다. 몇 호실을 찾는 게 아니라 ‘이음’, ‘어울림’ 등의 이름을 붙인 점이 돋보인다. 아울러 이름에 걸맞게 각각 다른 조명등과 가구, 그리고 색들로 분위기를 연출하여 훨씬 더 풍성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에디터 박하나 / 제공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