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김숙연 씨의 붉은 벽돌집

아파트에서는 몰랐던 주택에 사는 재미 (지족동L 씨댁 2002년 준공)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두고 비교 우위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 모른다.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주거 형태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쉽게도 희망 사항과는 다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만약 아파트와 단독주택 중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김숙연씨는 이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단독주택’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요즘 새롭게 주택단지가 형성되고 있는 대전시 지족동의 노은지구에 예쁘장한 2층 양옥집을 지었다.

 

‘단독주택’ 혹은 ‘전원주택’을 희망하는 이들은 그 성취 시점을 대부분 노후로 미뤄둔다. 분주하게 보냈던 시간을 여유 있고 편안한 집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일지 모른다. 김숙연 씨는 이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자주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아파트였던 그들 가족에게 이 집은 최초의 단독주택이다. 미리 마음의 준비는 해두었지만 집을 ‘깔끔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야 하는 공은 예상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 나이가 들면 제아무리 살림의 귀재라도 집안일에 손을 놓게 된다는데 이토록 손 많이 가는 주택을, 살림에서 은퇴해야 할 나이에 감당하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체력이 좀 더 넉넉한 시절에, 보살핌과 관리를 기다리는 집안 곳곳이 졸졸 따르는 애완견처럼 반갑고 재미로 느껴지고, 단독주택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생 세희와 초등학생 준엽이 역시 주택에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계단을 오르내릴 때 준엽이는 언제나 뜀박질이다. 아파트라면 이웃집에 민폐가 되고도 남았을 발소리를 울려대지만, 식구들은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만다. 첼리스트가 장래 희망인 세화는 새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큰 선물을 받았다. 큰 거울이 달린 음악실이 바로 그것. 든든한 방음 시설이 되어 있어 이제 밤늦게까지 연습이 가능해졌다. 세화는 이번 가을에 있을 연주회를 대비해서 밤낮으로 연습에 여념이 없다. 제법 터울이 많은 세화와 준엽이지만 두 아이의 공동 아지트가 있다. 아빠 서재에 마련된 다락방. 이 집에서 가장 높고 은밀한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은 모르는 나름의 추억을 만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뛰어다녀도 나무라는 사람 없고 숨을 곳 많은 이 집을 어쩌면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단독주택은 사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것을 짓고 꾸미는 데도 아파트와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반듯반듯하고 평면적인 아파트의 구조와는 달리 입체적인 형태의 주택은 운용의 묘를 훨씬 더 많이 허락한다. 대한주택공사를 통해 이곳 노은지구에 당을 분양받은 김숙연 씨는 ‘코리아건축인테리어’에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 시공을 의뢰, 주택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집을 짓고자 했다.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과 이미 지어놓은 다른 집을 방문해본 결과, ‘코리아건축인테리어’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에 김숙연 씨는 단 en 가지만을 제안했다. 주방을 이 집의 가장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것, 아이들에게 다락방을 선물해줄 것.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건축가와 데코레이터에게 일임했다.

 

그가 바란대로 이 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 최고로 대접받는 공간은 주방이다. 설계상 주방이 현관에서부터 곧바로 이어지기에 외부로부터 시선을 차단하는 장치로 가벽을 설치하였다. 유리문 없이 조형미 있는 문틀과 창문틀이 있는 가벽으로 둘러싸인 주방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곳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거실과 침실 등 1층의 다른 공간과는 달리 바닥을 한 단 정도 높여 가장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푸른빛의 화려한 꽃무늬 패턴으로 마감한 것도 주방을 주목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

 

이 집을 구경하는 시각적인 재미가 느껴진다면 과감하고 다양한 벽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대지 면적 80평, 1층 건평 43평, 2층은 20평. 그런데 이 집을 구경하다 보면 실제 면적보다 훨씬 넓어 보인다. 그것 역시 다채로운 벽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계단에서 아이들 방이 있는 2층으로 이어지는 동선 중에 꽤 많은 벽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거실은 편안하면서 고급스러움이 돋보이고, 계단실은 부드러운 색감이면서도 강한 선이 돋보이는 패턴이다. 천장 아래 가족사진을 전시해둔 벽면은 파란 하늘빛을 닮았다. 세화 방은 사춘기 소녀 아이 방답게 보랏빛 꽃물결이고 준엽이 방은 장난기 가득한 동화 그림이다.

 

천장이 높고 입체적인 동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 과감한 색감과 패턴의 벽지를 나열하여 하나의 공간이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한 시각적인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실제 면적보다 집이 더욱더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은 단지 ‘벽지’ 뿐만은 아니다. 나무 테이블이 놓인 앞마당, 2층 서재에서 연결되는 베란다, 아이들 놀이방인 다락방, 가장 꼭대기 옥상에 마련된 데크 등 대문부터 옥상 끝까지 시각적인 어드벤처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덕에 크기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쉽지 않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양한 만큼 자연스레 ‘넓다’고 기억되는 것은 아닐는지.

 

김숙연씨가 집을 짓기로 했을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이 ‘스타일’. 특별히 고집하는 분위기는 없었지만, 처음에는 막연하게 모던 스타일의 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직은 ‘젊은’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한편으로 가장 무난하게 연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클래식 스타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엔 남편의 의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남편은 지금까지 계속된 아파트 생활과는 다른, 단독주택이기에 가능한 ‘정말로 편안한’ 집을 원했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하는 데는 클래식 스타일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정말로 편안한 집’을 연출하기 위해 데코레이션을 담당한 ‘코리아건축인테리어’의 노태린 실장이 가중치를 둔 것은 가구의 선택과 배치, 가구와 소품의 숫자를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장식적인 요소를 적당히 두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시각적으로 여유로워 보이기에 거울, 램프, 코모도 등을 두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소재 선택 역시 자연스럽고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나무와 패브릭을 중심으로 했다. 메탈 소재일 경우 완곡한 선과 부드러운 색감으로 차가운 인상을 최대한 배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