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디지틀조선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내삶의 치유- 우리는 모두 마음속 두평이 필요하다.
‘힐링’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 분야에서 힐링을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최근 치유의 건축학개론을 주제로 한 강연을 의뢰받았는데, 강연을 준비하다 보니 내가 이런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나도 상처가 많은 사람인데, 심지어 마음 한쪽엔 아직도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자리잡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라는 거창한 주제로 강연을 할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떠올리며, 과거에 나를 보듬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몇 년 전 사업상 아주 큰 위기에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더 이상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눈물로 낮과 밤을 보냈고날 이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원망에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고 되돌릴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을 할 뻔한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시간을 견디고 나서 깨달은 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고 그 일로 인해 좌절했지만 다시 그 일로 삶이 바뀌었다. 아직 온전치는 못하지만 남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고 그들이 그곳에서 위로받는 모습을 보며 다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커다란 종합병원 안에서 작은 공간, 두 평을 얻어 ‘희망방’이라는 이름의 기도실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업적, 금전적 계산 없이 순수하게 다른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고 그 뜻에 동감하는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프로젝트는 완성되었다. 희망방에서 울고 웃고 침묵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내 고통도 차츰 과거가 되어갔다.
한편 치유의 강연을 했을 때 내 강연을 듣고 감동받았다고 하거나 간혹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들이 있는 건 내가 강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을 보며 감동을 받으며 그 시간 치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들이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청중과 함께 두 평의 공간을 마음속에 불어넣어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 시간에 각자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보면서,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두 평의 공간을 만들어 가며 평정을 찾아갔던 것이다.
내 삶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의사도 아니고 상담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동안 내 불행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다른 이를 탓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느껴진 순간을 가지면서 나 역시 치유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각자의 마음 속에 두 평의 공간을 마련해 보라고. 그리고 그 공간에 설계를 해보라고. 상처와 고통, 아픔, 원망, 절망으로 가득 차 더 이상은 빈 공간이 없을 것 같아도 어딘가에는 버려두었던, 잊고 있었던 틈이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다. 남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준만 생각할 뿐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스스로가 원하는 일인지도 알 수 없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에 나를 끼워넣기 위해서 자신을 깎고 다듬느라 우리는 상처투성이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상처를 치유해 줄 사람 역시나이다. 스스로를 알고 아끼고 위로하여 마침내 자기 위안을 이루어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치유’이다.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불완전한 삶을 채워가는 게 오늘날 필요한 치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2평 내마음의 공간을 만들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을 치유한다. 자신을 살피면서 스스로를 알아갈 때 나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생기고 나아가 자긍심이 생겨 나간다.
나의 고통과 아픔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에 틈틈히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위로를 하는 시간을 통해 황폐해져 있는 내면의 빈 자리들을 메워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