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디지틀조선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Co-creative! 디자인에도 유재석이 필요하다.
‘융합’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요즘엔 모든 분야에서 융합이 트렌드처럼 대두되고 있고 융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비빔밥’을 가장 좋은 예로 많이 이야기하는데, 디자인도 융합의 좋은 예가 되기에 충분하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내기까지의 모든 건 협업의 결과물이다. 다른 많은 일들도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공간디자인은 디자이너 한 명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했다고 해도 그 디자인을 현실세계에서 실행에 옮겨 결과물을 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온전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철거, 목공, 설비, 배관, 조명, 도배 등 각각의 공정에서 그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이 실수 없이 자신의 임무를 잘 해내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결과물이 잘 나왔다고 해서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각 공정 간의 완벽한 협업과 화합이 좋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멋진 레이아웃이 있다 한들 그것은 플랜일 뿐이고 플랜이 실제가 되면 사람들간의 보이지 않는 조화와 이해가 결과물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는 것은 마치 각 재료가 제 맛을 잃지 않으면서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종합적인 맛을 내는 비빔밥을 먹는 것처럼 짜릿해서, 그것이 바로 공간디자인이 주는 성취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렇다면 단순히 공간디자인의 분야 내에서의 융합이 아니라 더 광대한 디자인 융합은 어떤 것일까?
디자인 융합이란 단어가 처음에는 생소하게 다가왔지만 병원 디자인에 발을 담그면서 실제 내가 경험하며 터득하며 본격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병원 공간을 바꾸기 위해 거의 병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낮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디를 바꿔야 하는지 찾아 다녔고 밤에는 환자들이 없는 틈을 타서 공사일을 감독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 눈에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의 움직임들이 들어왔다. 내가 병원을 고치는 사람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날 만나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불편과 일하면서 겪는 애로사항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마치 환경 개선 상담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설계를 한다기보다는 병원의 각기 다른 부서와 파트간 사람들과의 충돌을 방지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공간개선을 두고 완충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환자들의 입장에 서 보기도 하고 근무자가 되어 하루를 다녀보기도 하면서 마주치는 혼란과 애로점을 체크하는 와중에 병원의 예산에 맞춰 공사를 진행하는 일이다 보니 디자이너로서의 미적 감각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 수렴 결과물에 마지막 선정리를 하는 데 필요했다.
병원의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은 제각기 목적이 다르다. 주된 방문자인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느끼는 병원에 대한 생각과 종일 일터가 되는 근무자들의 견해가 같을 리 없다. 근무자들 역시 의사, 간호사, 행정업무를 하는 사람, 거기에 병원의 시설을 서포팅하는 사람들까지 다 제각기 하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 합치점을 찾아 가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병원을 디자인하면서 공간에 대한 디자인의 콘셉트를 부여하기보다는 이곳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는가 내지는 이곳에 머무를 사람들의 어떠한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내가 생각하는 융합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의 이러한 융합적 관점의 노력이 가져온 혁신적인 성공사례로 알려진 것은 미국 올랜도주에 있는 병원 <메이요클리닉>이다. 이미 몇 년 전 책으로 출판되어 이 병원의 사례는 우리나라 및 전세계 병원들이 추구하는 미래 이상적인 병원의 전략과 철학의 지향점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알려진 혁신 사례들은 단순히 병원이 잘 되기 위한 이익적인 방법이 아니라 각기 다양한 부서별들의 통합적인 노력과 서로의 영역을 돋보이게 하는 협진들, 특히나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가진 디자이너가 포함된 CFI(Center For Innovation)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환자가 중심이 되는 가치관’이 실제로 실현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 중에는 아직까지 이러한 ‘협업’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놓친 채 조직의 업적뿐 아니라 타 분야와의 협업을 통한 상생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처럼 포장하고 이를 융합적 성과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게 공유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진정성은 금세 알려지기 때문에 앞으로 융합을 대하는 태도에서 디자이너들의 사고방식은 예전과 달라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공간’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각자의 분야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비전 등을 교류하는 <사람과 공간(Human Space Society)>이라는 세미나 모임을 시작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다. 지난달에는 디자인은 한 시대를 드러내는 형상이며 아이돌은 한 시대를 비추는 영상이라는 전제로 대한민국 대표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아이콘을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덕목과 결부시켜 풀어보는 흥미로운 내용의 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 주제를 풀어 놓으신 가인 디자인의 박인학 대표님 강연 중 오늘의 글과 매치가 되는 몹시 인상적으로 남았던 내용을 잠시 소개해 본다.
‘ HIDDEN’ 이라는 키워드로 언급된 개그맨 유재석. 다른 개그맨보다 유행어나 개인기가 많지도 않은 그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MC가 되어 국민MC라고까지 불리는 이유는 결코 자신이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고 했다. 유재석은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게스트들이 가진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자신을 감추고 상대를 부각시키지만 결과적으로 유재석이 자신을 낮추고 감출수록 그의 능력과 존재감은 더욱 높아지고 빛난다고 했다.
디자이너 역시 그래야 한다. 디자인을 의뢰하거나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조절, 수용하고 각 단계의 작업이 문제없이 완벽하게 끝나도록 그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modulator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디자이너에게 융합이란 자신을 감추고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능력을 합쳐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과정을 원활하게 통솔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융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디자인의 융합. 유재석이 국민MC로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처럼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각각의 특색을 살려내고 조화를 담아낸 co-creative를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융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다른 개그맨보다 유행어나 개인기가 많지도 않은 유재석 그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MC가 되어 국민MC라고까지 불리는 이유는 결코 자신이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