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디자인이 환자를 치유한다
기사 2015.10.15
종합병원 확 뜯어고치는 공간디자이너 노태린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
자연 감상 암센터치료실 등 탈바꿈
메르스 사태후 의료공간 개선 시급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병원의 본질은 환자들의 질병을 낫게 하는 데 있죠. 병원을 병원답게 하는 본연의 기능을 이용자의 필요와 조화롭게 설계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입니다."
15일 공간디자이너인 노태린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45)는 국내 종합병원을 비롯해 중소병원들의 공간 설계에 대해 "철저히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담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들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사태는 의료공간의 디자인과 운용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그는 말한다. 환자의 질환에 따른 동선 분리 등 공간 구획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됐다는 것이다.
노 대표는 "의료공간 설계는 무엇보다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적절한 동선을 구축하는 데 있다"며 "이는 환자와 의료진, 일반 직원 등 병원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가 존중되는 기능적인 공간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디자인에 앞서 환자와 가족들, 의료진과 직원들의 고충과 의견을 일일이 들어보는 과정을 거친다"면서 "의견을 모을수록 새로운 실마리도 얻고 더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가 직원들과 함께 현장조사에 중점을 둔 결과 다양한 아이디어가 병원 건축과 리모델링에 반영됐다. 녹색과 주황, 파랑과 노랑 등 특정 질환에 이완 효과가 있는 색을 활용해 진료과목을 구별하고 환자들이 자연채광을 받으며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 환자가 수액을 맞는 잠시라도 창밖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한 암센터의 치료실, 농촌의 텃밭을 실내로 들여온 노인요양센터 등 무수한 공간이 탄생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의 배경에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노 대표의 철학이 일관되게 작용했다. 그는 "좋은 디자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며 "힘겨운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병원 내부를 바라보면 문과 화장실, 엘리베이터 위치 등 공간을 구성하는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 결과 늘 어수선하고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도 개선할 수 있었다. 환자들을 세분화해 유형별로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동선을 재정비했다. 특히 응급실 관련 정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해 환자들의 불안감을 줄인 것도 보람 있는 성과였다.
물론 일반 상업시설보다 규모도 크고 내부도 복잡한 병원 디자인이 마냥 순조로울 리 없다. 노 대표는 "완성된 도면을 가지고 실제 작업하기까지의 과정도 복잡하지만 병원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과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잘 꾸며진 도안을 제시하는 콘셉트 디자인이 아닌 사용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공감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의사 중심의 효율성을 추구하던 병원이 보수적인 모습을 탈피하는 추세라고 그는 말한다. 노 대표는 "요즘 병원은 스타일에 매달리는 디자인보다 병원 내의 환자와 의료진의 진료 환경이 효율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동선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지금까지의 병원 디자인이 환자를 많이 수용하기 위한 효율 추구의 측면이 컸다면 앞으로는 이용자 개개인이 만족하는 공감과 치료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간디자이너이자 작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노 대표는 1994년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인테리어디자인 석사와 환경디자인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노태린 앤 어소시에이츠 대표이사이자 헬스케어디자인학회 홍보이사, 경기도 의료원 자문위원, 여성건축가협회 노인분과 부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대전 성모병원, 대구 파티마병원 등 전국 500여병상 이상 병원의 동선 구축 설계와 자문을 맡았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