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디지틀조선일보에 기재된 글입니다,

 

디자인과 협업–통합적인 연결로 시행착오를 이겨나간다.

 

만약 당신이 암환자를 위한 병원을 디자인해야 한다면 어떤 점을 고려하여 디자인에 반영할 것인가. 병실•검사실• 휴게실 등의 개수와 위치• 넓이, 환자와 보호자•의 사• 간호사 등 병원 이용자들의 동선, 전기와 수도 설비, 냉난방 시설, 벽의 색깔과 조명의 종류, 문과 창문의 모양, 바닥과 천장의 재질 등?

 

여기까지만 떠올리셨다고 해도, 꽤 많은 것들을 생각해낸 편이지만 실제로 병원 공간을 디자인할 땐 지면에 일일이 적을 수도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 한명(또는 여러 명)의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지만 그 요구들만으로 디자인을 할 수는 없다.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총동원해도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요구는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넘어버리기 때문이다. 시설팀에서는 뭐가 필요하고 전산팀에서는 뭐가 필요하고……. 그 요구들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기에 모두 새겨들어야 하는 것들이다.

 

서두에서 예로 든 ‘암병원’의 경우를 다시 이야기해볼까? 암환자들의 경우 특히 후각이 매우 예민하다. 환자를 대하는 수간호사를 대상으로 했던 인터뷰에서 그들은 말했다.

 

“의사의 옷깃에서 풍기는 향수 냄새까지도 그들에겐 고통으로 느껴져서 피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 암병동을 디자인할 땐 시각적, 청각적인면 외에 후각적인면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게 된다. 절대로 책에서 배울 수 없고 디자이너의 감으로도 예견할 수 없는 산 지식은 결국 다양한 관련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듣고 이해하는 가운데 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사용자를 다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 설계와 디자인 리서치는 매우 한정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설계업의 수임료가 종잇값도 되지 않는박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전 리서치 및 사용자 경험의 실제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인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런 상황에 길들여져 지금까지도 전형적인 방법으로만 일하려고 하고 다각적인 리서치와 협업의 방법이 생소한 디자이너들의 마인드 문제이기도 하다.

 

박하고 힘든 현실일지라도 세상은 사람들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용자 중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져가고 있으니 이를 위해 계속 다가서고 접근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관련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예상 가능하게 만들어 더 나은 공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피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책에서 이런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뉴욕에 있는 유명한 공연 예술종합센터인 링컨센터를 개보수할 때, 음악학자와 음악 애호가들이 디자인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링컨센터에 있는 건축공간들이 축조된 이후 문제가 되어온 건조하고 탁한 사운드를 잡아낼 수 있었고 음향이 좋지 않은 공간의 좌석을 없앨 수 있었다고 한다. 음향 기술자와 건축가는데시벨 레벨과 무대의 넓이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관객이 어떻게 듣는지는 간과했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뤄낸 긍정적인 결과이다.

 

이 책에서는 인류학자, 엔지니어, 생물학자, 심리학자로 이뤄진다학제적 디자인팀이 처음부터 잘못된 디자인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초판이 40년이 지난 오랜 이 책에서도 디자인에서의 수평적 협업과 다학제적인 방법을 강조하고 있으니 디자인에서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디자인의 영역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다양화되어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요구를 만족시키는 공간을 만들려면 디자이너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수용하고 반영해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용자들의 요구, 전문가들의 의견과 제안 등을 받아들여 디자인하다 보면, 이디자인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디자인의 융합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다학제간의 조화로운 협업’이 계속 강조되면서 결국이 또한 사람과 사람간의 어울림이라는데 결론이 도달한다. 나 혼자만두고 보는 기쁨이 아니라 다 함께 만들어내는 즐거움으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디자인 융합의 선한 방향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지만 협업을 통한 디자인 융합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함이다. 진정한 협업의 결과물은 이렇게 말해준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는 행위는 결국 세상의 이치를 알고 서로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적인 연결을 하는 것이라고. 진정한다학제 협업은 한 분야의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예상 가능하게 만들어 더 나은 변화를 꿈꾸게 한다.